고운소리(산행)

[스크랩] Re:오봉산을 다녀와서

날밤새우 2010. 1. 2. 14:14
오봉산을 다녀와서/마나술루
    산행코스:배후령-1~5봉-부용계곡-공주탑-소양호 선착장 산행일자:2006년 2월 26일 산행시간:5시간 44분[10시50분~16시34분]
     

[10시55분 배후령]

주말이면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은 산행지의 검색으로 이어진다
답답한 도심 속에서 불현듯 떠나고 싶은 욕망이 느껴질 때는
산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화려한 불빛이나 소란함에 빠져 있지도 않고
묵묵히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
오늘도 오봉산을 찾아 새벽녘에 내린 비의 흔적이 널브러진 도심을 떠나
햇빛산악회의 버스는 아늑하고 낭만적인 경춘가도를 달려간다

북한강의 푸른 물결이 나무와 펜션들 사이로 햇살에 일렁이고
춘천시내에서 다시 굽이 돌아가는 화천을 향하는 길은
산그늘 쪽으로는 언젠가 내린 잔설들이 나목들과 어우러서
차가 지날 때마다 풍경화를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이 아름답다

차창으로 지나치는 그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지고 있어서
자꾸 천천히 가자고만 했는데 어느새 배후령 휴게소다
버스에서 내려서니 아담한 산들이 반겨준다
봄을 실어오는 바람에 나목들이 빈 가지를 출렁거린다.
산을 닮아 나 또한 출렁거린다
먼 거리를 돌아 다시 제자리에 와도 시간이 멈춰있을 그곳에서
오봉산이 눈앞에서 보아달라 보챈다
오늘도 소박한 마음은 온몸으로 산을 껴안으리라

휴게소에서 도로를 건너 포장마차 우측의 오봉산을 향한다
초입부터 깔딱 고개다
가팔라서 오르기가 힘들어 부쳐진 이름인가
얼어붙은 잔설까지 군데군데 있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높은 산이 아니라서 쉽게 오를 수 있으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으리라
미끄러운 길을 이리저리 비켜가며 15분가량 올라가니
마적산과 1봉을 가르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11시10분 마적산 초입에서]

모두 1봉으로 향하지만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오늘도 한 조를 이룬 행운의빌어님,금파님,늘보님과 함께
오른쪽의 마적산을 향한다
결빙구간을 어렵게 지나 예전에는 초소가 있던 넓은 공터에 도착한다
공터 옆 전망바위에 올라서자마자 거침없이 다가오는 소양호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오봉산에서 왼쪽으로 내리뻗은 산줄기며
마적산의 음지에는 잔설들이 봄을 거부하고 아직도 겨울을 붙들고 있다 
안부 한 모퉁이에는 청평사까지의 거리가 7km란 표식이 외롭게 서 있고
겨울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차지가 않다
그 바람 앞에 겨울나무들의 빈 가지들이 수런거린다

옷을 다 벗은 채,한 계절을 거뜬히 보내고도 아름다움인데
내 몸은 무얼 걸쳐서 복잡하고 얽혀진 속내를 감당 못해 산을 오르는가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에게 모든 걸 다 줄 수 있다면
나무처럼 나도 그런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버려서 엊는 행복,피곤한 영혼이 나무에 매달린다
방법을 알려 달라고...


[1봉 나한봉]

마적산 초입의 봉에서 오랫동안 머물다가 오봉산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완만한 능선을 걷노라니 바람이 드세다
가슴이 열리며 도심 속에서 멈췄던 숨들이
호흡을 하기 시작을 한다
울창한 신갈나무 숲에 가려진 길이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좌측 응달에는 잔설들이 겨울 분위기고
우측은 따뜻한 햇볕으로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두 계절의 대비를 느끼면서 걸어가는 능선길은 유유자적한 산책로 같은 느낌이다

 

길옆의 전망대 바위로 올라가니 왼 쪽으로는 배후령 고개가 드러나고
오른편으로 소양호가 펼쳐진다
소슬한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11시20분 2봉 관음봉]

1봉을 방금 지나쳤는데 벌써 2봉이다 2봉이란 표식도 없고 그냥 2봉이려니 생각한다

[저 멀리 소양호는 아득한 구도의 그림이고]

[진혼비 앞에서]

3봉을 향하는 길은 나타나는 암릉들로 눈이 즐겁다
이제부터 비로소 느껴지는 산행의 묘미
암릉 여기저기엔 작지만 오랜 세월 자라왔을 노송들이 운치 있게 도열해 있어
마치 동양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10여m 높이의 가파른 절벽이 길을 가로막는다
바위에 매달려 있는 쇠사슬을 잡고 절벽을 올라간다
쇠사슬을 잡고 오르는 중간에 청솔 바위 비석과
89년 이곳에서 추락사한 신동섭씨를 기리는 진혼비가 있다

 

"사랑하는 산을 통하여 극복 의지를 키우다
여기 산화하니 진혼하노라 1989.9.3"


이전엔 깊은 산골이었을 이 산에도 어김없이 이렇듯 가슴 아픈 흔적이 있다
비석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푸른 하늘은 봄을 향해 달려가지만 마음엔 먹구름이 인다
진혼비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릴 때 마음은 벼랑으로 떨어진다

[12시 오봉산 정상]

왼편으로 오음리가 내려다보인다.
베트남전 당시 맹호부대 등 월남 파병 부대가 훈련을 받던 곳이라 한다
청솔 비석이 서 있는 바위에 올라서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소양호의 푸른 물빛이 시원함의 깊이를 더한다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풍경이지만 부용산행까지 코스를 잡았기에
아쉬움을 남기며 발걸음을 돌린다
윗쪽에서 수런수런 들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눈에 익은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다
먼저 도착한 백곰님을 비롯한 햇빛산악회 대다수 회원님이 식사를 하고 있다
안부 한쪽에는 오봉산 정상의 표지석이 서있다

[12시26분 4봉 보현봉]
자리를 만들어 같이 식사 하고 싶지만 너무 많은 사람과 조망도 답답해
사진만 담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3봉을 벗어나자마자 적송들과 어울린 암릉이 도열해 있어
마치 동양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전망 좋은 바위 한자릴 차지하여 눈을 즐겁게 한다
가볍게 부유하는 마음속으로
내가 지나온 배후령으로 이어지는 연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어지는 오음리 분지가 가마득하고, 추곡터널 속으로 숨어드는
46번 국도 주변의 산들도 조망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멋진 풍경은 소양호와 그 너머 멀리 파도처럼 펼쳐지는
산줄기들이 그리는 하늘금이다

[개구멍 바위]

전망바위 왼쪽에는 사람 몸 하나 겨우 들어갈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는데
개구멍바위라 한다

머리가 먼저 나오면 순산이고 발이 먼저 나오면 난산이라는데...


[12시 54분 갈림길]

한참 동안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5봉 쪽을 향한다
가파른 왕모래 길을 내려가다 보니 갈림길 이정목이 나타난다
청평사 천단과 5봉 및 부용산을 가르는 갈림길이다
오른편의 내리막 길을 잡으면 계곡을 따라 청평사로 가게 되지만
부용산 쪽으로 곧장 향한다

[1시15분 5봉에서 해탈문 쪽의 하산구간]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잔설들이 얼어붙은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한다
5봉에 올라서니 오봉산과 함께 청평사를 에워싼 부용산이 눈앞에 있다
멋진 조망을 기대했지만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길을 따라서 내려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 길을 따라가면 배치고개를 거쳐 부용산 정상으로 이어지지만
암릉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청평사 해탈문 쪽으로 향한다

[망부석]


급경사 내리막길 중간마다 바위들이 펼치는 선경을 눈에 담는다
산길을 걷다가 힘이 들 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왠지 위로가 된다
널찍한 도로나 반듯한 길거리보다는
걷다가 언제든지 걸터앉아 다리쉼을 할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오솔길에서 만나면 더욱 그렇다
그런 길이 있는 한 아름다운 풍경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길을 가다보면
고달픈 내 한 몸쯤은 누일 만한 쉼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1시23분 부용산으로]

처음부터 코스에 넣은 부용산행을 포기할 수 없어
조망을 즐기다가 길을 되돌아 5봉으로 올라간다
"다시 올라가요?"
늘보님의 목소리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나를 믿고 따라주는 행운의 빌어님,금파님,늘보님
그들의 원망소리가 귓전에 들리는듯하지만 나만의 생각뿐일 것이다
갈림길 삼거리에서 베티고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부용 계곡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걷고 싶지 않아서
다시 길을 버리고 인간의 발자국 흔적도 없는 능선을 탄다


[2시 점심시간]

낙엽이 푹푹 빠지는 숲길,인간들의 흔적이 전혀 없는 온갖 자연만이 차있다
낙엽의 향긋한 냄새와 이끼 낀 그루터기도 있어
싱그러운 환희와 벅찬 생명력을 아낌없이 가슴속에 불어넣어 준다
방공호의 흔적이 있는 평평한 자리, 분위기가 좋아서
여기에서 자리 펴고 식사를 하기로 한다

바람도 없고 아늑하다
숲 어딘가에서 까마귀의 울어대는 소리가 쉬임없이 들려온다
내 몸은 동화되어 온몸이 자연의 소리로 휘감긴 듯
이 자리에 정지된 상태가 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먹는 즐거움
내가 나무며 돌이 되고 바람이 되어 영원히 머물고 싶은 곳이다


[2시40분 하산길]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청평사로 향해 내리뻗은 암릉이 아름답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대한 신갈나무들이다
그 언저리에서서 부용산이 마주보고 있다
바위 위에 우뚝 선 노송 사이로 보이는 소양호는 넓은 어머니의 품이고
우리의 얼굴마다 즐거움이 묻어나와 흥겨움의 콧노래를 부른다
가슴속 파고드는 산사랑,내려가는 길은 즐거움이 가득하다

[3시20분 암릉구간]

가파른 내리막 구간 끝에 갑자기 단애가 나타난다
이런 구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어차피 피해갈 수도 없는 상황
유심히 살펴보니 세미클라이밍으로 통과할 수 있는 길이 그려진다
바위의 홀드를 잡고 썩어가는 나목의 뿌리를 잡고
낮은 포복으로 바위의 벽을 타고 내려간다


[3시33분 갈잎 속에서 느껴보는 동심]

울퉁불퉁 솟은 바위마다 분재 같은 소나무가 우뚝 서 있고
아득한 벼랑은 필름처럼 나를 휘감는다
내 흔들리는 마음을 아는지 소나무는 자랑하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묵묵히 향기만 날린다
어렵게 암릉을 통과하여 내려오니 무릎까지 빠지는 낙엽이 피날레를 안겨준다

[3시50분 부용계곡에서 산행종료]


힘들게 거쳐온 바위를 뒤돌아보며 참나무 숲을 내려간다
46번 도로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개울의 흐르는 물소리가 맑은 선율에 리듬을 타고 들려온다
여기에다 모든 것을 두고 가기엔 아쉬움 뿐인데
개울은 봄울 향한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 한다
옷에 잔뜩 묻은 낙엽들을 털어내고 개울로 내려가 세수를 한다
푸른 하늘엔 솔개 한 마리가 맴돌고 있고
산행의 열정은 고요한 숲 속에 내려앉는다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청평사로 향한다
산행은 끝났지만 여기까지 와서 유서 깊은 사찰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4시20분 공주탑]

유락시설지구를 지나 공주탑에 도착한다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이 있는 곳
비록 전설 속의 이야기지만 미물과 인간에 얽힌 사랑은 감성을 통해
또 다른 변화의 신선한 에너지를 만들어 준다
근처 식당에 물어보니 마지막 배가 5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 고려시대 이자현, 조선시대의 김시습이 은거하였던
청평사를 둘러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았기에 만족한다

 
 
[4시34분 소양호 선착장]
 
선착장에서 배에 몸을 싣는다
푸른 빛 안으로 빨려들고 시침이 뚝 뗀
소양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 좋다
문자로 그려낼 수 없어
저며 오는 가슴이 숨을 멈춘다
이제 이 모든 풍경을 가슴에 담아서 속세로 돌아간다
열정의 부대낌으로 요동치는 신열을 헹구고 ...
 
 
출처 : 햇빛산악회(독신,싱글산악회/여행)
글쓴이 : 마나술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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