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을 다녀와서/마나술루
산행코스:유일사매표소-유일사-장군봉-영봉-부쇠봉-문수봉-소문수봉-당골매표소
산행일자:2006년 1월 22일
산행시간:4시간 40분[5시30분~10시10분]
[새벽 4시 황지연못]
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문막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얼핏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버스는 벌써 황지연못 입구에 도착해 있다
버스에서 내려 황지연못을 향한다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이기도 한 황지연못은 상지와 중지, 하지로 구분되며
상수도 취수원으로 이용되며 한국 명수 100선 중의 한 곳이라고 한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얼음조각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남들은 취사준비로 배낭을 풀고 황지연못의 한켠에서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사전에 매식하기로 결정한 새벽나무님,늘보님과 황지연못을 둘러보는데
남은 시간을 할애한다
항상 산행 때에는 비박 장소나 산장에서,아무리 피곤해도
말없이 버너에 불을 지피는 그 순간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기회만 되면 매식을 좋아하니 예전의 순수함을 잃어가는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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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30분 유일사 매표소]
근처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다시 버스를 탑승,5시25분 유일사 매표소에 도착한다
엄포를 때리는 회장님의 날씨예보에 철저한 무장 하느라 몇 분을 버리고
대낮처럼 훤한 매표소를 통과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누군가의 가슴속 가득 채워 여린 꿈을 펼치기라도 하듯이
하얀 꿈으로 잠들었던 기지개 켜는 작은 별들과 반달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다.
슬픈 찬란한 눈물방울과도 같은 무수한 별들과 달....
새벽의 어둠을 가르는 태백산 별과 달빛의 향연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 하늘 아래에는 무수한 산행인파의 발걸음 소리가 어둑새벽 적막을 깨고 있다
[6시 유일사 매표소,사길령 매표소,유일사 갈림길 능선]
헤드랜턴을 밝히고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를 10여 분 쯤 오르니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다
유일사와 능선의 지름길 코스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얼어붙은 눈 때문에 아이젠까지 착용하고
갈림길에서 사람들이 많은 지름길 코스를 버리고 유일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침을 포식한 탓인지 초입부터 입을 벌리면서 호흡을 조절해야 할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한다
아무도 앞서가지 않는 고요한 산길,나의 헉헉대는 숨가쁜 소리와
텅 빈 공간에 소리 되어 들리는 쓸쓸한 바람소리가
아이젠의 금속 소리와 맞물려 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내 뒤로 영문모르고 따라붙은 등산객들의 헤드 랜턴 행렬이 꼬리를 문다
가파른 깔딱 길을 오르니
사길령과 유일사 쉼터를 가르는 능선의 이정목이 나를 반겨준다
[6시15분 유일사 쉼터]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날 등이라 바람이 세차다
오를수록 깊게 발 피는 눈과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수도 많아진다
유일사 쉼터 삼거리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이 몰려 시장터를 방불케 한다
시장의 호객하는 상인들보다 더한 산행 리더들의 목소리와
무질서한 등산객들의 행렬이 피난민처럼 꼬리를 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산을 찾아 호연지기를 기르고
자연과 함께하는 것은 좋으나 그러다 보니 태백산같이 유명한 산은 더 고통을 앓는다
지체의 인파 때문에 마음 같아선 곤돌라 아래 쪽의 유일사를 들리고 싶지만
체증이 심한만큼 산행시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새벽나무님과
뒤쳐진 금파님과 늘보님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휴식을 취한다
[6시40분 동트는 아침]
유일사 쉼터에서 수많은 인파에 밀려 가파른 길을 올라간다
주변 산줄기들의 꿈틀거림이 점점 선명해진다
이렇듯 여명은 산줄기에서 시작된다
헤드 랜턴을 벗어도 불편함이 없다
길섶의 주목들과 잡목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에 조망이 탁 터진 능선의 안부에 도착한다
인간들의 잡다한 소리에 신열을 앓는 나목 사이로 여명이 떠오르며
차디찬 태백산의 겨울바람이 내 몸을 후려친다
어슴푸레 여며오는 아침은 밤새 잠 못 이룬 사람의 눈동자처럼
한기에 얼어붙어 있어 한참을 서서 아침이 맑아 오기를 기다려 본다
여명 끝에 산의 희뿌연 윤곽이 드러난다
선을 그은 듯 골을 등지고 제 모습 드러낸다
그냥 아무 잡념 없이 아침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겨울바람이 옷깃 추스르게 만들더니
나를 풍경 속으로 끌어들인다
[6시50분 장군봉의 장군단]
무작정 지켜볼 수만 없는 상황,발걸음을 옮기니 장군봉이 지척이다
천제단의 하나인 장군단에 도착하니 칼날 같은 한기가 몸을 급습한다
일출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이 추위를 피해 장군단 안에 몰려있다
고대했던 눈꽃이 없어 아쉽지만
그러나 눈꽃이 없어도, 상고대가 없어도 맑은 시계로 인해
답답한 마음이 환하게 열리는 날
감추어 놓았던 것,비밀스런 것들을 한꺼번에 아낌없이 보여주는 심정으로
오늘은 태백산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친다
[장군단에서 조망되는 영봉의 천왕단]
그렇다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때문에 무작정 여기에서 일출을 기다릴 수는 없다
사람들이 들끓는 장군단을 벗어나 천왕단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우측으로는 아련한 소백산의 산군들과
좌측으로는 함백산이 여명으로 어둠을 걷어낸다
몸은 얼어 있어도 내 눈길 속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오히려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준다
종종 뒤를 돌아보니 삶의 여정 같은 지나온 길들이 고스란히 증명서를 만들어 내고
천왕단의 한 폭 그림 같은 모습에 힘듦은 몽땅 달아나고
줄줄이 매달리는 감탄사 추스르기도 바쁘다
신기할 정도로 시계가 맑아 감추었던 비밀스런 것들이 다 드러난다
[7시10분 천왕단에서 늘보님,금파님,새벽나무님]
영봉의 천왕단을 향하는 길은 유유자적한 능선길이다
유난히 능선에 철쭉나무가 많아 5월이면 해마다 태백산 날 등을 붉게 물들인다
영봉의 천왕이 가까워지면서 바람은 장군봉 이상으로 거세게 몰아친다
날이 설대로 서 코끝을 얼얼하게 하고
살 시린 나뭇가지를 맴돌아 마음도 얼어붙는다
영봉에 도착한다
하늘은 더 붉게 진홍빛으로 물들어 금방이라도 해가 솟을 것만 같다
이곳 역시 일출을 기다리는 무수한 사람이 천왕단을 점령하고 있다
천왕단은 3개의 천제단 중에서 대표격인 곳으로 해마다 개천절이면
이곳에서 하늘에 제를 지낸다고 한다
[천왕단의 이정목]
여기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단종비각과 망경사를 거쳐 당골로 하산하는 길이다
마음 같아서는 망경사를 둘러보고 싶지만 시간을 예측할 수가 없어 곧바로
부쇠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7시24분 하단]
천왕단을 벗어나자마자 가파른 내리막 길이 시작한다
얼어붙은 눈과 얼음으로 아이젠을 착용했는데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길을 내려간다
급경사 구간이 끝나는 지점의 안부에 작은 제단이 나타난다
하단이다
그 앞쪽에는 어울리지 않게 묘가 자리하고 있어 확인해 보니
조선시대의 어느 고관의 봉묘다
[7시30분 하단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갑자기 천왕단 쪽에서 와!하는 함성이 들려온다
무의식적으로 하단의 제단 위로 올라가 보니
나목들 사이로 처연한 태양이 부챗살을 펼치며 서서히 떠오른다
앙상한 가지 너머로 바라보이는 빨갛게 물든 일출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다
저 멀리 동해를 뒤덮은 구름을 뚫고 불덩이가 진홍빛을 발하며 떠오르고 있다
밝음의 원천인 태양!
밝음의 산인 태백산에 떠 오르는 태양은 장엄함을 넘어 신성하다
[그림자 주목]
그 빛이 쏟아진다
함백산이며 백두대간 산줄기에 쏟아진다
생명의 빛을 기다리며 주목이 가지를 흔든다
주목과 파란 하늘의 조화 그러나
생사를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생을 향한 몸부림은 처절하다
[7시50분 망경사,천제단,문수봉 갈림길]
찬란하게 비추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길을 내려간다
기승을 부리던 바람도 숨어버린다
단군의 아들 부소왕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고 하는 부쇠봉을 향한다
길섶에는 작은 진달래,철쭉 가지들이 옷을 할퀸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지만 봄철에는 이 가지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 주목들과 어우러져
태백산에서 가장 운치있는 풍경을 만들 것이다
가파른 내리막길,부쇠봉을 그냥 지나쳤나 보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어떤 특별한 표지석이 안 보인다
눈 때문에 미끄러운 길,좌우측 산자락엔 온통 은색의 자작나무 숲이다
유달리 어느 산보다도 태백산에는 자작나무들이 많은 것 같다
백색의 산자락에서
바람과 맞서 겨울을 이겨내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8시10분 문수봉 오름길 좌우 측의 산죽들]
당골과 문수봉을 가르는 삼거리에서 문수봉을 향한다
추위와 마주치며 걷는 길에서는 잡다한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수많은 고통과 막다른 길에서 오히려 깨우침을 얻듯이
아무런 잡념이 있을 수 없는 이런 추위 속에서
청정심이 싹트는지도 모른다
문수봉의 돌탑이 지척에 보이고
길섶의 눈 속에서 울창한 산죽들이 푸름을 과시하고 있다
문수봉도 지척이고 뒤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부쇠봉과 영봉이 모습을 들어낸다
[8시18분 문수봉]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문수봉에 도착한다
바람이 온몸을 부숴 버릴 듯 거세게 휘몰아친다
사진 담기에도 자세가 불안정하다
그렇다고 이 좋은 조망을 놓칠 수는 없다
신라 때 문수상이 솟아올랐다는 문수봉의 조망은 어느 봉보다도 좋다
너덜구간 위에는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강처사라는 분이 쌓은 7개의 돌탑이 군데군데 있고
[문수봉에서 조망되는 망경사와 천제단]
잠시 숨을 돌리고 오른쪽 바위를 휘돌아 보니
몇 군데 훤히 트인 전망 좋은 장소가 있는데, 뒤돌아 보니
우리가 걸어온 유장한 능선과 망경사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문수봉에서 조망되는 함백산과 풍력발선시설]
시선을 우측으로 돌리니
함백산은 이름을 잊어 버렸나 맨몸으로 부대끼고 있다
지나온 길은 군데군데 흰색으로 덧칠해져있고
저쪽엔 뭐가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걸음을 보태어 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파란빛 허공이 있을 뿐...
다시 되돌아서서 걷는 걸음에도 그저 그림들뿐이다
때론 멀리, 때론 가까이서...
[역광 속의 산군들과 조록바위봉]
바람을 피해 아랫쪽 안부로 내려간다
남향의 양지바른 곳이다 보니 안방처럼 너무 아늑해
오늘 같은 날에는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앞쪽에는 역광으로 다가오는 산군들과 실루엣을 남기며 달아나는 마루금들
맑은 하늘을 시샘하는 안개와는 상관없이
흐릿하게 다가오는 그림들은 전율이다
저기 볼록한 봉우리는 어떤 이름을 가졌을까?
조록바위봉이란다
방향은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천이 있는 곳
조록바위봉과 산군들이 흐린 연릉 속에서 수묵화를 그리고
이름이 무얼까 열심히 기웃대지만
내가 분간할 수 있는 건 오직 감동뿐이다
[8시50분 소문수봉]
화방재에서 만항재로 이어지는 길은 힘에 겨운 모습으로 함백산을 지나
문수봉으로 흘러내리던 능선이 소문수봉을 일으키고
다시 두리봉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더니 끝자락을 내리뻗어 숨을 가라 앉인다
문수봉을 출발하여 소문수봉에 선다
내가 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듯이 가까이 선
볼 수 없는 것들이 다른 곳에서는 보인다
영봉에서 내리뻗은 능선이 너무 부드럽다
떠나고 싶지 않은 미련의 물결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무엇을 위해 이리 바쁜 걸음으로 밟아 지나쳐야 하는지...
그저 아무런 의미도 부여 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내 하나의 삶이 그저 안일함에 안주 하지 않았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길을 걷는다
[9시 당골,금곡,문수봉 갈림길]
갈림길에서 당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섶 좌우 측의 흰눈이 덮인 산자락엔 굴참나무들과 나무의 귀족인 자작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군데군데 쓰러진 거대한 고사목들과 넝쿨식물들이 어우러져
태백산의 무게를 더해준다
한여름이면 잎들이 만들어낸 그늘로 에어컨이 부럽지 않을 듯한 길이다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원시적 순수성이 느껴진다
가끔 보이는 얼어붙은 빙폭과 계곡 가의 절벽이 숲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만 이따금 들려올 뿐,한적한 분위기다
[9시20분 당골.소문수봉,문수봉 갈림길]
가파름은 끝나고 길도 경사가 완만해진다
눈이 내린 지가 오래되었는지 나무 위에 눈은 없지만
산자락과 길에는 녹지 않은 눈들이 소복소복 쌓여 있다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뿐만 아니라
얼음 위에도 그대로 쌓여 있다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아 계속 조용한 산길이 이어진다
문수봉을 곧바로 오르는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한다
[10시 울창한 낙엽송구간]
개울과 동행하다 보니 길을 버리고 얼어붙은 얼음 위를 걸어보기도 한다
우측의 얼어붙은 폭포가 가슴을 저미게 한다
"쉬었다 갑시다'
경관이 좋은 곳에서는 오래 머무르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계속 걸으면서 산과 호흡하는 것,나의 산행 스타일이다
시간적 여유도 충분해서 먹을거리를 꺼내놓고 모처럼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낙엽송 구간이 시작된다
눈을 올려다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파란 하늘
그 끝 선에 빈 가지들이 만드는 하늘 금이 뭉툭한 그리움처럼 다가온다
그들의 겨울나는 모습이 사뭇 고고하다
황량한 느낌이 들 만큼 모든 것을 벗어버린 겨울나무들은 오늘도 침묵하는데
눈꽃축제장에서 문명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허울좋은 산의 표현을 단지 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오늘도 산에서 내려간다
[10시 10분 당골 매표소]
[10시15분 눈꽃 축제장 및 석탄박물관 입구]
울창한 낙엽송 구간을 벗어난다
단군성전을 지나 당골매표소를 통과한다
눈꽃축제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축제장과 석탄박물관을 둘러보고 오늘의 일정을 끝내는 순간이다
내가 지나온 태백산의 능선을 뒤돌아본다
모든 나무가 햇살을 받으며 하늘이 파란 알몸으로 껴안고 있다
얼음처럼 투명해져 오는 내 영혼의 수채화가 되어...
※하는 일이 바빠서 이제 산행기를 올립니다
추운 날씨에 산행을 같이하신 새벽나무님,금파님,늘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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