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 천화대의 석주길에 얽힌 사연]
설악산은 너무나 많은 아름다운 사연들을 갖고 있다
아름다움에 비해그 설악의 노래는 슬픈 노래가 많다
아니 서럽도록 아름다운 노래다
'너와 나 다정하게 걷던 계곡길, 저 높은 봉우리에 폭풍우 칠 적에…'
설악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노래한 '설악가' 속에 나오는 산(山)친구이면서
사랑하는 사이이기도 한 '그녀'는 가을 설악산에서 조난당해 세상을 뜨게 된다
그녀를 설악에 묻고 그리움을 삭이지 못해
매번 설악산에 되돌아와 부르고 또 부른 노래가 '설악가'다
'굽이져 흰띠 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요.
꿈 같던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외설악 초입에 있는 노루목 근처 산자락에 가면
지금은 호텔과 여관 등 숙박시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사자(死者)의 마을'이 있다.
설악을 사랑하다 결국 설악의 품에 영원히 안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곳에는
1969년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목숨을 잃은
한국산악회 소속 대원 10명의 무덤(산악인들은 '십동지묘'라 부른다)을 비롯해
설악산에서 숨진 여러 산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이 중에는 엄홍석과 신현주라는 두 남녀의 무덤이 있다.
연인 사이로 여러 차례 설악산을 함께 올랐던 두 사람은 67년 가을 어느 날
'설악가'의 가사 그대로 설악에서 등반사고로 함께 세상을 떴다.
이들과 같은 요델산악회의 회원이었던 송준호는
엄홍석과는 피를 함께 나눈다는 자일파트너(암벽등반 동료)인 동시에
의형제 사이였다.
그런 인연으로 송준호는 엄홍석과 신현주의 무덤을 자주 찾았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로지르는 공룡능선은 설악의 주릉이다.
이 공룡릉에서 흘러내린 설악골과 잦은 바위골 사이를 천화대라고 하는
험준한 바위능선이 치밀어 올라 있다.
천화대는 여러 갈래의 작은 능선(지릉)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중 설악골에서 왕관봉과 범봉 사이에 있는 성곽처럼 생긴
바위능선 하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송준호는 68년 7월 이 바위능선을 맨처음 오르는 산악인이 된다.
산악계에서는 등산코스를 개척한 초등(初登) 산악인에게 코스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명명(命名)권'을 주는 것이 관례다.
송준호는 그 바위능선에 '석주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형제 엄홍석과 그의 연인 신현주의 이름 끝자인 '석'과 '주'를 따와 붙인 것이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석주길'이라고 새긴 동판을 만들어
석주길이 천화대와 만나는 바위봉우리의 이마 부분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쳤다.
그리하여 '석주길'이라는 신화가 설악산에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