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초목님]
아직도 한낮의 햇살이 뜨거운 9월 막바지
산자락에는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수를 놓은 짙푸른 녹음들이 온몸을 햇살에 태워
결실의 계절,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푸른 한철 그늘서 낭랑하게 울어대던 매미조차도
사라질 자신의 운명을 조용히 기다리며 귀의를 준비하는데
마음속으로 오르고자 했지만 번번이 순위에서 밀려났던 내변산을
햇빛산악회를 통하여 찾게 된 것이 나에게는 행운처럼 느껴진다
신사역에서 싱글여행클럽의 회원들을 포함한 3대의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경유,어느새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차창밖에는 너울너울 황금빛 벼이삭이 춤을 추며 고개를 숙인 채
추수를 기다리며 가을 들녘을 풍성하게 한다
서해대교를 지나면서부터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수많은 섬이 해묵은 친구만큼이나
주변 들녘의 풍경과 편안함으로 어울려 해안도로는
연인들의 매력적인 드라이브 코스 같다
더 없이 짙푸른 산자락과 푸른빛 바다를 끼고 달려 가다 보니
버스는 부안톨게이트를 거쳐 11시30분 남여치 매표소에 도착한다
[깔딱고개를 오르며/사진/금파님]
버스에서 내려서니 시원한 바람은 지난 시간의 편린되어 머릿결을 흩날리게 한다
봉래구곡 매표소를 통해 내변산을 오른 적은 있지만
월명암을 들머리로 시작하는 산행은 초행길이다
아직도,삶의 무게가 무엇인지 잠시 도심을 버린 내 가슴에
야트막한 숲의 바람은, 내 안을 씻어 푸른 향기를 뿌리고
9월은 끝 자락을 보이며 나풀거리고 있다
크고 작은 산들 주위로는 회색빛 구름이 신비스럽게 둘려있고
바위와 이마를 맞대고 가을 치장 준비에 밀월을 속삭이고 있다
때론 고독함을 느낄 때 알 수 없는 낯선 곳이 내게 가장 익숙할 수도 있다는 거
내 키만큼이나 자란 잡초를 바라보며 답답하도록 숨죽인 내 안에
또 다른 이곳에 대한 호기심이 불씨처럼 뜨겁게 연소한다
매표소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데 눈에 익은 아리따운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암벽등반 산악회에 있는 소나무님이다
얼굴 본지도 꽤 오래됐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니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금파님,소나무님과 팀을 이뤄 매표소를 통과한다
[12시13분 관음 약수터 도착]
몸이 가벼운 나를 눈치 챘는지 백곰님은 배낭보다도 더 무거운
중간 담당이라는 직책의 상징인 무전기 하나를 건네준다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초입부터 계단으로 시작되는 쌍선봉을 향하는 길은 가파르다
아침에 늦잠을 잔 탓으로 택시비를 25000원이나 길바닥에 뿌린
몸은 창피한지 금파님의 배낭을 짊어지고서야 겨우 체면 유지를한다
가을을 향하는 산은 여름의 마지막 몸부림인지 녹음의 향기를 짙게 풍긴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나는 잠시 동안의 힘듦도 참지 못하고 헉헉대는데
오늘도 나무들은 자기 자리를 굳게 지키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당당히 서있다
걸림돌이 되는 나무뿌리와 잔돌들이 무수한 가파른 길을 올라 능선에 도착하니
숨어있던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어준다
앞서가던 월드컵님도 합류하여 운치 있는 오솔길을 걸어간다
밋밋한 능선길을 따라가니 관음 약수터에 도착한다
나무들도 수종이 바뀐 울창한 단풍나무 숲이며 약수터는 흔적만 있고 물은 메말라 있다
조릿대 구간이 시작되고 길섶의 전망좋은 바위가 나타난다
[12시20분 낙조대/사진/월드컵님]
낙조대 근처의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길고 긴 산아래 펼쳐지는 풍경들이며
숲에서는 오선지 없이 울려 퍼지는 벌레들의 음악소리...
설레는 가을 음악회에 분명 우리는 초대받아 온 것이 확실하다
멀리 하늘 금을 그리며 달려가는 능선의 부드러움에서 여유를느끼고
오늘도 나만의 시간 속에서 초가을의 물씬한 정취들...
내가 보고 싶은 풍경들이다
바로 이런 게 삶의 즐거움의 중요한 부분이란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이처럼 산행을 즐기면서 여유도 더 많아졌고
조급한 마음과 나를 둘러싼 많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자연과 가까워진 생활이 많다 보니
모든 시름,걱정이 사라지며 산행은 어느 순간에 이제는 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2시30분 월명암/사진/양산박님]
밋밋하던 능선길이 내리막으로 바뀐다
서어나무,단풍나무,층층나무 등 울창한 숲사이로 월명암이 모습을 숨겼다 드러낸다
가냘픈 물소리가 들려오더니 실개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개천을 지나 우측으로 몇 걸음 더 걸어 월명암을 오르니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어디에 숨어 있다 어떻게 터진 것인지, 오밀조밀하게 쏟아지는
갑작스런 전망이 두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멀리 보이는 관음봉 쪽의 암군들과 어울린 주변의 산세가 너무 아름답다
낙조대 산자락에 비켜선 월명암
분위기가 너무 조용하여 등산객들 떠드는 소리가 부끄럽다
일부 건물들은 함석지붕이라서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부설거사와 그의 딸인 묘화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과
혈육의 끈끈함이 짙게 배어 있는 월명암!
세워놓은 안내판에 월명암 풍경을 아래와 같이 묘사해 놓았다
천하제일의 둥두렷한 월출(月出)
망망한 칠선바다의 찬란한 일몰(日沒),
무릉도원으로 끝없이 펼쳐진 아침 운해(雲海)
산태극 수태극의 옥순 같은 군봉(群峰)이 과연
해동 제일의 선경(仙景) 강산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2시 선녀탕/사진/월드컵님]
운치있는 댐 길을 벗어나 깔딱 길을 오르니 선녀탕 안내 팻말이 나타난다
정해진 시간 속의 산행이지만 그래도 빠짐없이 돌아보리라는 마음에
좌측의 선녀탕으로 내려간다
개울가 근처의 숲에서 분위기에 빠진 발비님이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준다
선녀탕에 도착하니 몇몇 회원님들이 탕 아래쪽 암반 위에서 식사를 하고있다
선녀탕 위쪽을 거슬러 올라 탕 주변의 바위에 걸터앉는다
큰 탕처럼 소를 이룬 곳에 맑은 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간다
이것 또한 자연이 수천 년을 걸쳐 만들어낸 위대한 걸작품
감탄의 탄성이 절로 터진다
아름다운 소는 누구든 뛰어들고 싶은 충동심 마저 느끼게 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먹는 점심은 반찬이 없어도 맛있어 소풍 나온 분위기다
산골 소녀의 수줍은 듯한 두 여인의 미소
가을 하늘도 구름을 벗고 청명하여 깔깔거리며 푸른빛 웃음을
펴지는 그물처럼 풀어놓는다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인지 어느새 후미의 월드컵님과 슬치님이 도착한다
슬치님이 떠나고 이제는 후미 조가 되어 월드컵님의 카메라 속으로 들어간다
[4시05분 내소사,세봉 갈림길/사진/월드컵님]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가 숨이 멎을 듯한 가파른 통나무 계단 길을 올라
내소사,세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소사 쪽으로 하산에 들어간다
하산길도 경사도가 만만치가 않은길,통나무 계단이 시작되다가 암릉길이 나타나고
어느 순간에 내소사는 그윽한 전경을 풀어놓는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내소사,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건너편 관음봉의 줄기는 내소사의 앉음새를 더욱 편안하게 한다
길섶의 습기조차 없는 바위틈에서 소담한 꽃을 피운 구절초 꽃대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삶의 물결을 적극적으로 헤쳐 가며 살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항상 무엇인가
가시적인 것에 기대고 싶은 습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내가 기댈 언덕이며 노래이다
악조건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는 나약한
저 구절초 한 포기 만큼의 인내함도 없는 나는 부끄럽다

출처 : 햇빛산악회(독신,싱글산악회/여행)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