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소리(산행)

[스크랩] 만산홍화의 영취산

날밤새우 2010. 1. 2. 14:37

 

[항일암을 향하는 도로의 벚꽃]

 

꽃 중에서 벚꽃처럼 화사한 꽃은 없는 것 같다
나무 하나에 헤아릴 수 없는 꽃송이가 군집하여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흰빛의 연등을 켠 벚꽃터널을 걷는 진해처럼 그런 장관은 아니지만
향일암에서부터  길가의 가로수들은 그 정취를 실감나게 한다
하얀 꽃잎이 수놓은 오늘 같은 날
좋아하는 사람과 정담을 나누며 이런 길을 걷노라면 운치가 있을 것 같다

 


[10시10분 영취산 산행초입]

가로수들은 오동도의 기행까지 마친 우리를 자연스럽게 유혹하여 영취산으로 인계한다
여수 시내를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황사 스모그 속에서 보이는 흐릿한 바다가 호남정유 앞에서 멈춰 선다
영취산 산자락에서는 홀깃홀깃 진달래들이 유혹의 시선을 보내 온다
꽃이 그리운 사람들을 얼마나 유혹했던지
영취산 초입의 도로는 등산객들을 싣고온 차들이 빽빽하게 점령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호기심 가눌 길 없어 영취산을 올려다 본다
시선이 멈춰 ㅅ선 하늘가엔 진달래꽃들이 붉은빛으로 아스러진다
겨우내 채우지 못한 풍경 속을 거니는 요염한 여인의 자태로 성큼성큼 내게로 걸어 온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와! 멋있다!
바라보는 순간 감탄사가 연발한다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는 어느 누구의 마음도 예쁘지 않을 수가 없다
시계를 막는 황사만 없다면 더 강렬하게 안을 수 있을텐데..
배낭을 정리하면서도 시선은 산에서 떠나지 않는다
야트막한 산이고 산행시간도 4시간이면 충분하기에 무게도 최대한 줄인다
인기있는 봄 산행지기에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초입부터 무수한 등산객이 몰려든다
180명의 햇빛산악회 회원님들을 포함하여 널찍한 임도는 등산객들로 빽빽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어느 때 보다도 즐거워 보인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듬직하신 새벽 나무님과 동행한다
그리고 금파님,생기님,가을의 전설님을 비롯한
햇빛산악회에 첫 산행이신 마젠타님과 멀리 서산에서 오신 한성희님까지
합류하다 보니 일행은 7명으로 늘어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오른다
길섶의 나뭇가지에도 봄의 전령들이 튀어 올라 연둣빛 손을 피켓처럼 치켜들고 서 있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경쾌해 보인다
황사의 흐릿한 시계로 쪽빛 바다가 주는 아름다움은 감상할 수 없지만
군데군데 핀 벚꽃이며 활엽수 군락지에서 다소곳한 진달래들이 분위기를 돋운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니 답답하던 조망이 트인다


 

[10시25분 돌고개 갈림길]

 

갈림길 4거리 지점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측의 영취산으로 향하는 길
완만했던 초입과는 달리 억새들이 군락을 이룬 가파름으로
산은 초입부터 숨을 몰아 쉬게 한다
산을 오를 땐 언제나 힘이 들고 숨이 차는 건 당연하다
비록 무수한 등산객으로 좁은 길은 몸마저 중심을 흐려 놓지만
감수성은 변화와 환희로 가득하다

 


[10시 30분 산벚꽃 군락지]
 
4월 속 풍경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숨어있던 산자락은
산벚꽃들로 흰 물결이다
앞쪽을 올려다보면 진달래들의 고운 빛들이
수많은 감동을 내 안에 투영시키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고
가슴도 아지랑이처럼 넘나드는 황홀한 경지에 이른다
얼마 전에 읽은 어느 소설가의 글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나이를 먹는 것은 연륜이 쌓이는 멋진 예술작품이라는..
아직도 이런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존재한다는 것이 행복하다
황사에 선명한 시계는 아니지만 바다도 분위기에 맞게 물결을 출렁이며 동행한다
물결에 밀려온 바람에 산이 숨을 쉬고 봄은 춤추듯 일어난다
짧은 몇 시간의 산행이 벌써 슬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을 붙들어 내게 가두고 싶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봄은 이렇게 여름이란 성숙한 새로운 계절의 탄생을 위해 흐르다 흔적 없이 가겠지만...


[10시50분 첫 번째 능선의 안부]

 

동행인들의 밝은 목소리들을 들어 보면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느낌이다
문득 생기님이 받은 분위기를 깨는 전화 한 통화
수많은 상춘객의 차 때문에 예정된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버스가 주차되어 있다는
회장님의 긴급한 전화다
백곰님과 통화가 원만하지 않기에 생기님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다
백곰님은 이미 선등으로 시야에서 사라진 난감한 상황
일행에서 일탈하여 발걸음을 가속, 계속해서 추월을 한다
탁한 공기와 가파른 오름길에 가슴은 불에 데워진 듯 달아오른다
가까스로 능선에서 백곰님을 대면하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진달래 군락지에서]

 

48세의 나이 탓인가
그냥 주저앉은 채로 숨고르기에 여념이 없는데
붉은 진달래의 화려함과 아래쪽에 핀 은은한 벚꽃의 풍경에 도취하여
땀방울 닦는 것도 잊는다
꽃술에 입술을 맞대니 누군가의 얼굴의 기억이 유혹으로 밀려온다
붉은 빛깔의 환희가 바람에 흔들리며 한 계절의 삶을 정열로 태워 버리는
물결 속에서 출렁인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며]


다시 일행들과 합류하여 진달래 꽃길을 걸어간다
호남정유 너머로 바라보이는 바다도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은 여유를 되찾아 상쾌하다
부드러운 능선은 첫 봉인 가마봉에 올라서니 암릉이 나타나고 변화를 꾀한다
바위 사이에 핀 진달래는 암릉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나뭇가지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연두색 이파리들이 신비롭고
황사 속에서 바다와 섬이 보일 듯 말듯 그리움이 넘쳐 흐른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영취산
시계만 뚜렸하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11시 가야봉]

 

[진달래꽃의 비애/마나술루]

 

그대는 이슬을 머금고 갓 피어난 꽃이어라
지상의 오묘한 향기 품안에 가득하여
거역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활짝 피어났다

불게 물든 고운 꽃잎이 하나 둘 시들어
가녀린 줄기 아래 조용히 떨어질 때
따사로웠던 태양의 모습만 기억하고
화려한 일곱 빛깔 무지개는 침묵시켜라

 

지난 현란했던 그대의 기억들만이
물기 없는 꽃잎 하나하나에,문신처럼 깊이 새겨져
향기 없는 황사 바람에 산산이 부서져
저 멀리 허공을 맴돌며 그대를 위로하리라

 

 

[11시15분 점심시간]


이른 아침을 먹고 나섰기에 허기를 느껴,적당한 암반 위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배낭을 푼다
빈 배낭들 같았는데 펼 처 놓으니 여러 가지 먹거리가 나온다 
비록 처음 만난 분들도 있지만 친구 같은 사람들하고 동행하며
좋은 풍경 앞에서 먹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다
자연에 취하다 보면 살아가는 일상과 삶의 저변에 흐르는 아름다운 얘기들도 나온다
또 하나의 소중함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
유유히 정상으로 흘러가는 능선을 바라보니 지체된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11시40분 철계단을 향하는 지체의 행렬]

 

점심을 끝내고 지체의 행렬에 합류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우면 잠시 눈을 돌리면서 바다도 바라보고
지천으로 피어난 진달래들을 감상하기도 한다
피난민이 몰려가는 듯한 짜증스러운 행렬이지만 꽃들이 나의 감정을 추슬러주고
포근히 감싸주니 고맙기만 하다

 

[11시54분 철계단을 통과해서]


아름다운 풍경 속에 들면 육신이 좀 힘들지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할 수 있다지만
여기에서도 몰상식한 사람들과의 접촉은 짜증으로 이어진다
암릉구간의 철계단을 잡고 어렵게 밑으로 내려간다

 

 

[12시10분 영취산 정상]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 역시 비좁아 계속해서 지체상태다
어렵게 정상에 올라서니 수많은 사람의 움집으로 발디들 틈도 없다
좌측의 군부대 벙커로 사용한 듯한 허름한 건물 옥상에도
많은 사람이 몰려 식사를 하고 있다
방금 이라도 무너질 듯한 건물의 옥상 위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위험스럽게 보인다
산의 품위는 둘째치고 안전을 위해서라고 철거를 해야겠다
수많은 사람 때문에 정상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도 남길 수 없다
곧바로 진달래 축제장 쪽으로 하산의 발걸음을 옮긴다
하산길 역시 군데군데 위험이 도사린 길 때문인지 움직임이 없는 행렬이다
건너편 시루봉의 진달래 군락지를 오르는 길도 개미처럼 사람들이 붙어 있다

 

 

[12시25분 도솔암]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르는 상황

도솔암을 향하는 입구는 몰려든 인파 때문인지 아예 막아 놓았다
행렬에서 일탈하여 일행들과 샛길을 찾아 손쉽게 지체구간을 벗어난다
널찍한 임도가 시작된다
축제장인 봉우재를 향하여 내려가는 길은 숲의 나무부터 수종이 다르다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오는 가지에 걸어둔 시어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축제장이 가까워질수록 오름길의 등산객들도 무수하다
내리막 구간이 끝나고 널찍한 안부인 봉우재에 도착한다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시를 담은 플래카드와 현수막을 제외하고는
이곳이 축제장일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시장터나 다름없는 호객하는 상인들의 함성과
행락객들이 몰려들어 혼란스러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 영취산 진달래/엄정숙]

 

영취산 진달래 보러 갈 때는
부디 사랑의 말들 삼가고
술 다그는 비법도 잊고
시린 삶의 이야기도 그만 접으란다

 

그냥 맨얼굴로 가서
맑은 삼한의 하늘 아래
지천으로 널브러진 진달래꽃
그 꽃 빛만큼 고운 색으로
사랑도 하고 술도 빚고
꽃향기처럼 살다 가란다

 

사람 사는 일이
일생에 몇 번이나 이리 환한지
궁금하거든 저기 저 꽃 대문 열고
이승도 저승도 아닌 꽃길
따라가 보란다

 

[12시36분 축제 행사장인 봉우제]


식수도 부족하여 갈증이 느끼던 차였는데 생기님이 거금을 투자하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린다
너무나 시원하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산악회의 한 사람은 여름에 북한산을 산행할 때마다
다른 먹거리는 아예 준비하지 않고,휴대용 아이스박스에 아이스크림만
30여 개씩 준비해서 올라간다
뜨거운 여름날 북한산 백운대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상상해 보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뭇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하고 그는 일순간에 스타가 된다
문득 생각나는 내 말에 모두가 웃음바다를 터뜨린다

 


[12시50분 흥국사를 향하는 임도]

 

지체의 행렬을 보니 시루봉을 거쳐 흥국사로 하산시간을 예측할 수가 없다
차라리 조금 일찍 내려가서 뒤풀이라도 즐겨보자는 내 제안에 모두가 흡족해한다
흥국사로 내려가는 길은 널찍한 계단으로 시작한다
여름날이라면 터널처럼 에워싸진 팽나무길이다
황량하던 가지에도 피어오르는 새싹들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1시10분 개울에 발을 담그면서]


한참을 불규칙한 돌들이 박힌 길을 내려가니 수량도 풍부해진다
그 길 따라 쭉 이어진 개울가엔 등산객들이 물에 발 담그고
즐거운 비명을 토해 내고 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개울가로 향한다
반석 위에서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근다
시리도록 찬물,오늘 하루의 모든 고행을 혼자 둘러멘 발에 대한
최대한의 베려라고나 할까?
마냥 발을 물에 담그다 보니 영취산 산행 중 가장 행복을 만끽하는 것 같다.
졸졸졸 물 흘러가는 소리,근처 어딘가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신선하다
무질서한듯 하면서도 질서를 유지하는 나무들과 그들이 흘려내는 물
욕심도 아집도 없는 근심과 걱정도 없는
그냥 산속에 묻힌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1시28분 흥국사]

 

무수히 오르는 등산객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 담그고 있는
등산객들의 즐거운 비명 소리가 같은 소리지만 묘한 대조를 이루며 정적을 깨트린다
계곡과 물이 조화를 이룬 숲의 터널을 빠져나오니 흥국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흥국사는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처음 지은 절로서
임진왜란 때 절이 모두 타버려 인조 2년[1624년]에 다시 세운 유서 깊은 절이다
그러나,죄근에 전국의 사찰 어느 곳이나 유행처럼 번지는 중창 불사
흥국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예 것 그대로 두면 좋으련만 굳이 중창 불사를 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


[1시36분 흥국사 대웅전 앞에서 생기님,마젠타님,가을의 전설님,금파님,한성희님의 포즈]

 

대웅전 앞에서 잠시 손을 모은다
새삼 내 속에 나를 비워내지 못한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지난 내 시간을 이제는 거두어들일 줄 아는 용기를 달라고 기원한다
대웅전 앞을 지키고 섰던 늙은 고목 나무가 미풍에 가지를 가만히 흔든다
동행한 여인들도 기도를 하고 있다
그녀들은 어떤 기도를 했을까
언뜻 마주친 그녀들의 얼굴에는 그저 잔잔한 미소가 머물 뿐이다
휴일을 맞아 방문한 많은 사람과 신축건물의 공사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마주하고서야 시간을 확인한다

 

 
[1시49분 흥국사 일주문을 나서면서]
 
포장도로를 지나 일주문에 도착한다
바깥쪽의 봄으로 가는 통로에서 봄 햇살이 황사에 흐릿한 눈빛으로 기웃거린다
빛의 공간을 통해 귓가에 들리는 봄의 소리
그소리를 뒤로하고 영취산 신행을 종료하는 순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한 새벽나무님을 비롯하여 한성희님,금파님,생기님,가을의 전설님,마젠타님
수고 많으셨고 같이한 시간 즐거웠습니다

출처 : 햇빛산악회(독신,싱글산악회/여행)
글쓴이 : 마나술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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